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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더 진행될 것 같지 않자

아쉽지만 나와 징쓰, 소금사리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더 듣고 싶었는데.. 흉흉한 소문은 뭐였을까.

​

난 느티나무에서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 똥덩어리부터 깨우기 시작했다.

징쓰와 소금사리가 핑크넥타이 누나랑 토막거인형도 차례로 깨웠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지났고, 토막이형은 술을 마신 상태라

운전할 수가 없었다.

​

"징쓰야, 소금사리야 우리 어쩌냐.. 토막이형이 술을 마셨으니

운전도 못할텐데.."

​

"그러게.. 택시라도 불러야 되나.. 근데 여기 너무 외져서 택시가 오나 모르겠어.."

​

"우리가 너무 들떠서.. "

​

우리끼리 서서 이제 어찌할 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핑크넥타이 누나가 한손을 머리에 얹은 채로 다가오며 말했다.

​

"야.. 토막이오빠 차에 텐트 있대.."

​

토막이형 쪽을 보자. 토막이형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몇 인용인데? 우리 다 잘 수 있대?"

​

"몰라.. 차에서도 자고 나눠서 자면 다 잘 수 있지 않을까?"

​

"아.. 응.."

​

그때 뒷짐을 지고 우릴 바라보던 김종만 선생님이 말을 걸어왔다.

​

"그 뭐시냐. 단테? 단테님!? 이렇게 부르니까 잼있네 허허허.."

​

"아 네.. 그냥 단테라고 부르시며 되요~^^ 그리고 말 놓으셔요."

​

"초면에 말을 낮추면 안되죠! 저 그렇게 무식한 사람 아닙니다.

단테님이랑 친구분들. 듣자하니 오늘 잘 곳이 없으면

울 도자기 작업장에서 밤새 노시는 거 어떠실까요..?"

​

"네?"

​

핑크넥타이누나가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거칠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

"와... 진짜요? 오늘 완전 신기하고 재미있는 날이다..

토막오빠. 똥덩어리. 징쓰, 소금사리 다 어때? 괜찮아?"

​

저기.. 내 의견은..

​

"어.. 좋아.."

"저도 좋아요 언니."

"저도 괜찮아요.."

"누나 저는 콜~~"

​

다들 집에서 내놓은거야? 왜들 이래 ㅠㅠ 난 아무 것도 준비 안해왔단 말이야.

세면도구랑 갈아입을 옷이랑 아무 것도 없어.. 난 샤워 정석으로 해야 잘 수 있단 말야!!

​

"아니 집에다 전화들부터 해보고..."

​

핑크넥타이누나가 너 미쳤냐는 눈을 하곤 내 말을 잘랐다.

​

"얌마 얌마 얌마.. 넌 얌마 그냥 따라오는거야..

오늘 누나가 잼있게 해줄께~~!!"

"그래 단테야 우리 예체능대는 과제하느라 언제든

어디서든 샐 수 있단다. ㅋㅋㅋㅋ"

토막형이 그렇지 그렇지 박수치는 핑크넥타이누나를 더욱 뽐뿌시켰다.

[핑크넥타이누나가 미쳐날뛰기 시작했습니다]

​

하... 망했다. 아까 고기 손질하는 거 볼 게 아니라..

이 누나 술먹는 거나 감시할 걸 그랬어..

​

그렇게 우리 모두는 넋청 김종만 선생님의 도자기 작업실에 가기로 했다.

일행중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내 차를 가지고 가는 걸로 얘기를 나누었다.

여기다가 하루라도 방치해 놓을 만한 차도 아니고,

내일 토막거인형 차를 다시 가지러 올려면 차를 가지고 가야했다.

내 차에 신난다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술취한 핑크넥타이 누나를 태웠고,

​

남은 일행은 다행스럽게도 김종만 선생님이 밴을 가지고 있어서 그쪽으로 모두 올라탔다.

그때 김종만 선생님의 밴쪽으로 갑자기 허규스님이 다가갔다.

​

"종만아~~ 나도 좀 같이 놀러가면 안될까?.. 나도 젊은 친구들이랑

놀구 시퍼잉~~"

​

"땡중이 진짜 넌 마.. 안 끼는데가 없냐. 아휴~~ 고기냄새.. 너 법복 당장 벗어!!"

​

그래도 허규 스님은 함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기분이 좋았는지 개구리처럼 목을 부풀리더니 크게 꺼억~.

종류를 알 수 없는 잡고기냄새가 우리 차에까지 전해져왔다.

​​

​시내를 벗어난 시골은 암흑세계가 따로 없었다.

길 가에 가로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저 앞으로 달달거리며 앞서나가는 김종만선생님의 밴.

포장된 도로라곤 하지만 어둡고 구불구불한 초행길을

빠르게 달릴 순 없었다. 어느새 밤 12시.

하루 종일 놀러다니느라 쌓인 피곤함에 눈이 조금씩 감겼다.

우리가 뒤따라가고 있다는 걸 까먹으신걸까.

김종만 선생님의 용달차는 막무가내로 어둠을 헤치고 먼 발치로 내달려갔다.

​

아니 뭐 바쁘신 일이 있다고 저렇게 빨리 가시지?

우리가 뒤에 따라가고 있는데..

​

내 964가 성난 엔진소리를 커다랗게 내었다.

핑크넥타이누나는 옆에서 곤히 잠에 빠졌다.

​

김종만 선생님의 작업장은 고달사지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었다.

저만치 앞서 나가던 후미등 불빛의 빨간 꼬리가 짧아지더니 

전조등 불빛이 크게 U자 모양을 그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오른쪽 아래로 추락하듯 빠져내려갔다.

​

다 도착한건가? 근데 저렇게 급하게 내려간다고?

​

가까이 가보니 왕복 2차선의 반대차로 너머에 아래쪽으로 터진 길이 보였다.

나도 크게 U자를 그리곤 바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

터진 길로 빠져내려갔다.

​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한 200미터 내려가니

길 양 옆으로 거무튀튀하게 가지없는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눈코입이 달린 것이 금새 보여 장승인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곧은 장승들이 아니었다. 몸을 있는 대로 꼬부라뜨린채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형상.

어디서 저런 나무를 주워와서 저렇게 만들었을까.

​

장승들의 무시무시한 환대가 끝나자.

저 앞쪽으로 용달차가 세워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세워진 건물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

[덜커덩 덜컹]

​

"어~이 여리 여리 여리 쭈~~욱"

​

허규 스님이 크게 손을 휘저으며 주차할 곳을 안내해주었다.

옆자리에 핑크넥타이누나가 잠에서 깼는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곤

스님을 바라보았다.

​

"저 스님 왜 온거야?..."

​

"응? 뭐?"

​

"저 스님은 왜 온거냐고.."

​

"그냥 도자기 하시는 분 친구라 따라온 거 같은데?"

​

핸들을 크게 돌려 한쪽 공터에 차를 주차했다.

​

"나가자 누나"

​

핑크넥타이누나는 왜인지 몸을 구부리고,

턱을 가슴에 파묻으며 차창을 응시했다.

차문을 닫고 내리니 밴에서 내린 사람들이 시끌거렸다.

​

"와~~~~ 여기 하늘 봐 하늘.. 별이 보여~~~~"

​

"와 진짜네. 여기 공기 정말 맑은가봐~~~"

​

​

김종만 선생님이 껄껄거리며 한마디 던졌다.​

​

​​"여기 공기가 좋지? 근데 너무 맑아. 그래서 도리어 사람이 못사는 곳이여.

사람은 말이야. 더러운 곳에서 더 건강하게 사는 법이지.​

​여가 예부터 사람 죽이던 터（基）로 유명하거든. 암도 안와 여긴.

나니까 와서 도자기나 굽는거지."

​

말을 듣던 허규스님이 배시시 거들먹거리며 말을 더했다.

​

"여기 종만이 제자들도 여럿 죽어나갔지."

​

"네?"

​

징쓰가 눈을 크게 뜨고 허규스님을 쳐다보았다.

허규스님은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싱긋 웃었다.

​

"ㅋㅋㅋㅋㅋ. 힘들어서 죽어나갔어. 힘들어서.. 가마 태는 일이 워낙에 힘들어야지~~"

​

"아휴 저 땡중. 또 쓰잘데기 없는 소리 지껄인다. 다들 안으로 들어~"

​

김종만 선생님이 허규스님의 등을 밀며 우리 모두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

"정리가 안되서 좀 지저분합니다. 작업실 구경 다 허면 저기 고깃집테이블 보이지요?"

​

김종만 선생님이 가리킨 곳엔 고깃집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 드럼통다리에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린 원형 스테인리스철판이 올려져 있고

뚫린 곳에는 화구가 1개 있는.. 그런 구조. 삥~ 둘러앉을 수 있게.

​

"저기 모여 앉으면 먹을 만 한거, 준비할테니까. 구경들 하고 앉아요. 손님대접은 해야지"

​

"종만아~ 고기좀 구워라."

​

허규스님은 싱글벙글 웃었다.

김종만 선생님은 대꾸도 앉고, 부엌으로 보이는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

징쓰랑 소금사리는 층층이 말려지고 있는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들과

도자기 만드는 기구들을 구경하며 작업실 이곳 저곳을 거닐었고,

핑크넥타이 누나랑 똥덩어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커다란 평상에 앉아 별을 감상하고 있었다.

​

​

​

​

​

"토막이형~ 자?"

​

"..... "

​

아까 토막거인형이 저쪽 작업장에 그냥

놓여있던 매트리스로 눕길래 혹시나했는데 불러도 답이 없다.

​

아 저 형 여기 자기 집도 아닌데 대자로 뻗었네..

아까 술 별로 안 먹은 것 같았는데...

​

"형. 뭐해.. 일어나~~~"

​

토막거인형을 깨우려 하자.

허규스님은 그런 내게 깨우지 말라는 손짓을 하면서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

"즐겁지요?"

​

"네?"

​

"오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 많았지요?"

​

"아.. 네.."

​

"젊은 사람들이라 좋네요. 피부도 탱탱하고...

​

"네? 피부요?... 아.. 네 감사합니다.​​"

​

"서울서 오신 분들이라 궁금한게 많네요."

​

"아 네..."

​

뭐 요즘 세상에 서울사람인게 특이한가?

​

"아.. 전 무엇보다 단테님이 궁금하네요."

​

​"네? 제가요? 왜요?"

​

"음... 그 가방에 들어있는 거.. 굉장한대요?"

​

"제 가방이요?"

​

허규스님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샐쭉 웃었다.

​

"네 그 나뭇가지 말입니다. 어떻게 기능하는 거지요?"

​

난 조금 당황했다. 나뭇가지가 들어있긴 한데,

가방 속에 그게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답을 해야할까 망설였다.

답을 기다리던 스님이 내 눈치를 살폈던걸까.

​

"초면인데.. 제가 너무 궁금한게 많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깃든 물건이라..하하"

​

허규스님은 스스로 호기심을 거두었다.

​

"전 종만이나 도우러 잠시 가보겠습니다. 살라마리꿈!"

​

부엌으로 들어가는 허규스님의 뒷모습을 상체를 옮겨가며 바라보다가

도포자락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제자리에 두었다.

​잠깐이지만 소름이 쬐끔 돋았다.

​

[부르르르릉]

​

그때 차 한 대가 덜컹거림에 맞추어 라이트를 

이곳 저곳 현란하게 비추면서 터덜거리며 들어왔다.

똥덩어리와 핑크넥타이누나는 평상에서 일어나

들어오는 차를 응시했다.

도자기 작업장을 둘러보던 징쓰와 소금사리도 작업장을 나와

불나방처럼 자동차 전조등불을 향해 걸어가다 평상즈음에서 멈춰섰다.

나도 방금 전 대화의 떨떠름한 느낌은 접어두고 그리로 향했다.

​

차에서 내린 사람은 아까 그 여자였다.

우릴 마을 잔치에 오라며 불렀던 여자.

​

"어유 다들 여기들 모여 계셨네요."

​

반갑게 인사하는 여자.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이어갔다.

​

"전 와화 스님이라고 합니다."

​

다시금 이어진 인사시간.

​

"종만선생님이랑 허규스님 안에 게시죠?

아까 잔치에서 남은 고기가 있어서 가져왔어요."

​

자동차 뒷좌석문을 열더니 다라이에

치덕치덕 쌓아놓은 고기가 보였다.

멧돼지 한마리를 잡은 듯한 고기양이었다.

똥덩어리가 대뜸

​

"제가 옮기겠습...."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와화스님은 말만이라도 고맙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더니

고기들을 다라이째로 번쩍 들어버렸다.

어떻게?

​

한손으로..

​

그 장면을 본 나랑 똥덩어리, 징쓰, 소금사리, 핑크넥타이누나

일동 얼음이 되었다.

​

그 무거워 보이는 다라이를 한 손으로 받치고,

건물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시는데,

발자욱마다 땅이 꺼지는듯 우직했다.

아마도 물기운이 가득한 터라 땅이

물을 머금어 그렇겠지.

​

우리 모두 와화스님의 뒤를 따라

스님 대단하다며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건물쪽으로 걸어갔다.

​

​​​아까는 어두워서 몰랐지만

이 여자 스님의 체격이 정말 다부졌다.

속세에서 보디빌더라도 하신 걸까.

​

（"형 근데 스님 굉장히 어여쁘시지 않아?"）

​

똥덩어리의 속삭임 그대로 와화스님은 머리카락은 박박 밀어 없었지만,

백옥같이 흰 얼굴에 그 흔한 점 하나 없어보였다.

티 없이 맑다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지 않을까.

​

와화스님이 건물로 들어가더니 익숙한 듯 아까 넋청 김종만 선생님과

허규스님이 계신 부엌 쪽으로 곧장 향했다.

​

잠시후 김종만선생님이 부엌에서 나오셨다.

손에는 그 뭐더라 부대찌개집에서 먹을 때 쓰는 그 얕고 넓은 냄비가

들려있었고, 냄비 속엔 정말 부대찌개 같이 생긴 찌개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

"이게 내 주특기 부대전골입니다. 자 저기 드럼통테이블에 빙~ 둘러 앉아봐요들~"

​

뒤이어 허규스님과 와화스님이 키득대면서 따라나왔다.

허규스님은 뒷짐을 진 채 와화스님에게 우리 들으란듯 말했다.

​

"와화스님. 젊은 친구들한테 직접 빚은 술맛 좀 보여주시게~"

​

와화스님은 양손에 큰 말통 두개를 쥐고 있었다.

저기에 술이 들어 있나보다.

근데 힘든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진짜 힘이.. 어휴..

​

글고 저 능글능글한 놈은..

저 무거운 걸 여자손에만 맡기고 자기는 뒷짐지고 걸어나오다니.

​

아까 대화로 왠지 내 속을 들킨 듯 싶어.

허규스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했다.

5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