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숨을 돌리니까 좀 낫네.



그 날은,

그러니까 시기 상으로는 그 뽀뽀사건 이후지.



아니, 그 전에 일단,

사건 직후에는 진짜 많이 어색했어.

어떻게 윤아를 봐야할까 모르겠으니까.



어쨌든 사귀던 여자 친구랑은 당연히 헤어졌지.

그 얘기 만큼은 윤아한테 꼭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바로 해줬어.

'그 사건'이 있기 며칠 전의 이야기야.



"나 헤어졌다."



"잘했네."



"그게 다냐?"



"뭘? .......걔가 그냥 순순히 그러재?"



"화냈지. 어떻게 자길 그럽게 갑자기 차냐고."



"거봐! 내가 뭐랬어?"



"뭘?! 그냥 차인 게 기분 나쁘다고 개욕을 했던 건데."



"응?"



"네가 뭔데 날 차냐. 차도 내가 차야지. 기분 나빠 죽겠다. 꺼져라. 그러던데?"



"참나! 자랑이냐?"



"그냥. 그렇다고."



"......"



하라는 대로 했구만, 뭔 반응이......



기분이 솔직히 좀 그랬지.

목이 간질간질해서 기를 쓰고 가래를 뱉어냈는데도

여전히 또 다른 가래가 걸려있는 느낌이랄까?

힘껏 코를 풀었는데 여전히 막혀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며칠간은 내내 기분이 그랬어.

안 좋은 기분이니 땅만 쳐다보게 되더라고.

만사 귀찮고 말이지.



그러다 어느 날은 윤아랑 접촉사고가 났네?



"야!"



"아, 미안."



"앞 좀 보고 다녀!"



"아, 미안하다고!"



"그게 미안하다는 태도야? 말로만 미안해?"



"아, 씹...... 그럼, 어쩌라고!"



"너 정말 왜 그래? 언제까지 그럴 건데?"



"내가 뭘?"



"세상에 너만 있어? 너만 힘들어? 애가 정말 왜 그러냐?"



"가만히 좀 냅둬!"



"뭐? 하아! 진짜......"



"진짜, 뭐!"



"됐다! 김호진, 너, 진짜...... 실망이다!"



뭐? 실.......망?

무릎이 꺾여서 땅에 쿵 쳐박히는 느낌이랄까?

가슴 한가운데를 해머로 쿵 내리치는 느낌이랄까?



하아! 실망이라......



실망스럽다는 말, 처음 들어봤어, 그 때.

난 윤아를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윤아한테 들어버렸어.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더라.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씨발.

개ㅈ같은......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



되는게 없잖아, 되는 게!





바로 그 날 밤이었어.

방에 처박혀서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거실로 나왔었지.

TV나 잠깐 볼 생각도 있었어.



그런데 주방 쪽에 윤아가 있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라 부모님은 잠자리에 드셨을 테고,

윤아도 사실 11시 이후엔 씻고 잔단 말이지.



근데 왜?



뭐, 일단 뺄 건 빼고 봐야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어.

그런데도 있네?



뭔가 끓이는 거 같았어.



아, 라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나올 때 힐끗 보고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멍하게 서 있더라고.



저녁에 부딪힌 것도 있어서 더 어색한 거야.

그냥 방에 들어갈까 싶었는데,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어.



그냥 모르는 척 소파에 앉았는데,

뭔가 좀 이상해.

윤아가 말이야.



라면 끓이는 게 뭔 한세월이야?

라면 끓이는 애가 팔짱 끼고 뭐해?

왜 가만히 있어?



너무 이상해서 윤아 쪽으로 가봤어.



"야! 너 뭐하냐? 물 끓잖아!"



"응?"



"뭐가 응이야? 물이 이게...... 야! 이걸로 무슨 라면을 끓여?"



너무 기가 막히더라.



라면은 뜯어놓지도 않았고

물만 보글보글, 팔팔 리드미컬하게 끓고 있는 거야.

윤아는 굳은 동상처럼 서 있고......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라면 끓일 물이 반도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 세상에.



"야! 서서 자냐? 불 낼일 있어?"



"......."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윤아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라.

입도 꼭 다물고.

고민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사람 참 헷갈리게 하는 표정이라니.



에잇! 진짜......



"너는 왜 그러는데?"



"......."



"야! 됐다. 말하기 싫으면 관두고, 너 저기 가서 앉아 있어라. 라면은 내가 끓일 테니까."



"......."



아나, 진짜 개답답하네.

왜 말이 없는 거야?

왜 영 못 마땅하다는 얼굴로 보는 건데?

라면을 끓여준대도 그러네?



"아, 뭐! 빨리 가서 앉아! 걸리적거린다."



이노무 기집애, 끝까지 말할 생각이 없나?

여튼 일단 툭 밀어서 보냈어.

그제야 움직이더라고.



라면을 끓여준대도 저 모양이라니.

근데 문득 저녁 일이 생각나는 거야.



"노윤아!"



"......?"



"진짜 실망이다! 넌 어떻게 아직도 라면 하나 못 끓이냐?"



"뭐야?"



오호라!

드디어 말문이 트이는구만.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



캬하! 저 지대로 째려보는 눈.

진짜 지대로 박박 긁어 놓은 모양이구만.



아~주 통쾌하더라.

속이 뻥 뚫리는 거야.



복수라는 게 그렇잖아?

감히 나한테 실망이 어쩌고 어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서 앉아! 내가 진~짜, 진짜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도록 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씨!"



"잠깐만 기다려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음이 자꾸 터져서 죽겠더라.

내가 밤만 아니었으면 휘파람도 불었다.

제대로 삐친 모양이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계란까지 잊지 않고 넣어서 진짜 맛있게 끓여서 갖다주니까

뚱한 표정으로 먹시 시작하더라고. 맛있게.



"맛있냐?"



-찌릿.



그 날카로운 눈매. 캬아!

삐친 모습이 왜 또 그렇게 이쁜 거야, 대체.



"맛있게 먹으라고."



말할 기분은 아닌가봐.

그래도 금방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떡끄떡하더니

또 맛있게 먹더라고.



윤아랑 나는,

각자 서로 기분이 아무리 그지같아도

마냥 어색하게 지낼 수도 없는 사이인가봐.



여튼!

중요한 건 다음 날 아침이지.



"야! 너......"



애가 얼굴이 퉁퉁 부었더라고.

내가 보자마자 고개를 확 돌려버리네?



"아! 라면?"



".......그래."



참나. 모기가 친구하자고 달려들겠네.

하긴 그 꼴이면 개쪽팔릴 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지 마, 이 멍충아!"



"내가 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렇게 흐지부지 풀어졌고

다시 전처럼 편하게 지내게 된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사건의 날이 다가왔어.

다가와버리고 만 거야.



그 때 윤아는 요리를 배우기 전이라

엄마가 전 날 다 해 놓은 국이랑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렸지.



"야! 김호진! 정신 차리고 밥 먹어!"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바가지를 벅벅 긁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야.



어쨌든 밥을 먹고는 난 소파에 또 파묻혀 TV를 봤어.

잠이 덜 깨서 꾸벅꾸벅 조는데 뭔 청소기를 그렇게 돌려대는지!



먼지 한 톨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구석구석, 사방팔방,

온 집안을 다 쑤시고 돌아다니더라고.



그러고도 모자라 손걸레로 닦고, 또 닦고......

진짜 가사 도우미 사이보그 같더라니까.



청소 전문 가사도우미 사이보그.

업그레이드 하면 빨래도, 요리도 OKay!



그런 거야? - _-



업그레이드 하려면 슴가*-_-*부터 좀 착실하게 할 것이지.

안 그래? - _-



좀 더 불루~욱하게 말이지.

골도 생기고 그래야 보는 사람 마음도 따끈후끈해지는 거 아니겠어?



여튼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윤아는 열심히도 하는 거야.

울 엄마가 안 해도 된다고 그렇게 몇 번이나 말씀하시고 가셨는데 말이지.



결국 다 끝내 놓고는 웬일로 지쳤던 모양이야.

그 전까지는 지치지도 않고 잘만 하더니.



"호진아!"



"왜?"



"잘 거면 방에 들어가서 자. 나 좀 쉬자."



"네가 방에 들어가서 쉬면 되잖아."



"나 동물 공장 볼 거야!"



동물 공장은 윤아가 교육 방송 외엔 유일하게 보는 TV 프로그램이었어.

그것도 일주일에 휴일 딱 하루, 한 편.



"봐. 안 말려."



"편하게 누워서 보고 싶단 말이야!"



"누워서 봐라! 누가 눕지 말래?"



"이씨!"



"김~씨! 미안하지만 난 김씨라고. 왜 맨날 이씨래?"



"이씨! 야! 장난해?"



"어. 장난하지, 그럼...... 그리고 나 김씨라니까? 이호진할까?"



"어휴우! 내가 진짜....... 그럼 똑바로 앉아봐."



어라? 벌써 끝?

확실히 이상해.

못 생긴 얼굴로 이빨도 드러내고 잡아먹을 듯이 덤벼야 하는데 말이야.



태도가 영 이상해 보이니 순순히 윤아 의도대로 해줬지.

예전에도 무릎 베개 같은 건 해줬던 적이 많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야.



근데 난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도 잊고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어.



어지간히 지치긴 지쳤는지 윤아는 내 무릎 위로 쓰러지더라.

그리고 편한 자세를 잡는 거야.



땀을 씻어낸 향기로운 비누 냄새가 났어.

익숙한 젖살의 냄새와 함께

언제부터 그런 걸 품고 있었는지 윤아만의 독특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달콤한 냄새도 났어.

아니, 향기가 났어.



내 얼굴 바로 아래에서.

내 무릎에서.



TV를 본다더니!

그럼 고개를 돌려야지......

왜 똑바로 눕는 거야.



네 얼굴이 보이잖아.

네가 눈을 뜨면 눈이 마주칠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난 네 얼굴을 볼 수밖에 없잖아.



채 마르지 않아 젖은 일부의 머리칼.

살며시 감겨 있는 눈꺼풀.

웬일로 지쳐버려 창백해진 피부와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입술.

눈부시게 새하얀 목덜이와 너무 예쁜 쇄골.



저절로 손이 움직이려고 해.

머리칼로,

얼굴로,

입술로,

또, 목덜미로......



꿀꺽.



숨이 막혀오는 거야.

호흡이 곤란해지는 거지.

죽음이야, 죽음.



꿀꺽.



으아! 아..... 안돼!

나는 또 갑자기 시험에 들고 만 거야.

어느 빌어먹을 신인지......

예고나 좀 해줄 것이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어.

정신을 차려야 할 거 아냐?



근데 그래서 그런지 윤아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 탓인가...... 흐억!



얘는 언제 눈을 뜬 거야?

왜 눈을 뜬 거야?!



"응?"



깜빡깜빡 눈꺼풀이 맑은 눈동자를 더 맑게 닦아주려는 듯 몇 번이나 움직였어.

아니, 날 유혹하려는 것 같았어.

아주 살짝, 움직였던 입술까지 날 유혹하려는 것 같았어.



참아야 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아! 눈을 감네, 다행히.

그러더니 기지개를 켜, 난데없이.

목도 힘을 꽉 주고 천천히 좌우로, 또 앞뒤로 움직이네?



뚜아!

그래서 또 본 거야. 보게 된 거야.

브...... 브....... 브라끈. *-_-*



"왜?"



"응? 뭐가?"



나 정신 없거든?

말 걸지 말아 줄래?



꿀꺽.



졸린 듯 호기심 가득 담긴 빛나는 눈으로,

나른한 듯, 한 없이 편안하고 눈부신 미소로,

그렇게 날 보고 있는데,

윤아가 날 보고 있는데 내 정신이 온전하겠냐고!

온전할 수가 있냐고!



"아, 왜에~?"



왜긴, 이 기집애야!

널 안아주고 싶다고.

너한테 키스하고 싶다고.



근데 참아야 하니까....... 응?



새삼 깨달아버렸어.



안는....... 다고?

키스를 한단 말이지......?



내 온몸의 피가 한 곳으로 몰려 킹콩을 소환하고 있었어.

거룩한 힘을 받아



불끈! 아자!



힘껏 기지개를 켜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거야.

위풍당당하게도 말이지.



근데.......

그게 왜 하필 지금이냐고!!!!!!!



"야! 왜 그렇게 보는데? 어딜보는 거야?"



"어?"



너무 신경을 썼나봐.

너무 집중을 했나봐.



킹콩 자식을 당장 죽여버려야 하니까



그런데......

만지면 만질수록 위풍당당해지는 녀석이잖아, 그 자식.



이도저도 못 하니 원망을 담아 나도 모르게 그 자식을 봤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런데......



윤아도 내가 뭘 보나 고개를 돌렸어.



오, 마이....... 갓......



아...... 아...... 안돼에에에에에엨!!!!!



윤아가 고개를 돌리면서 킹콩 자식과 부딪혀버렸어.

뺨이 불룩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킹콩 자식은 외부의 강력한 자극에 화들짝 놀라버렸어.



쿠오오오오오오오!



더 강력하게 윤아의 볼따구니를 밀어버리네, 허허.......

하여간 기운 센 천하장사 같은 자식 같으니.



난 이제,

멘ㅋ 붕ㅋ



허허허허.......



"음?"



근데 윤아는 아직도! 여전히!

자기 볼따구니를 힘껏 찌른 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어.

자세도 어정쩡하고, 고개도 돌리기 힘드니까 손을 움직이더라고.



더듬더듬.......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쿠와앜!



신났네, 아주!

빌어먹을 킹콩 자슥!



또 멘 ㅋ 붕 ㅋ



"응? .......엨?!"



이제 눈치챘니?

빛보다 빠르시군, 그 눈치.

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



나를 몇 초 동안이나 튀어나와서 또르르 굴러버릴까 겁나는 그 눈으로 보더라고.

그런 다음에야



"꺄~~~앜!!"



반응도 빛보다 빠르구나, 참말로.

허허허허허허......



-철썩!



어디서 익혔는지 누운 자세 그대로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더라고.

정확도도 기가 막혀서 찰지게 꽂히더라.

고개가 훽 돌아가도록.



남자로 세상에 태어나 이런 개망신이라니.......

싸대기까지 맞다니......



말하기도 지쳤다.

잠깐 물 좀......





............. 여기까지. 다음에 계속 ㅋ

ps; 밤에 올렸어야 하는데 두통 때문에 깜빡했네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간 수정을 하면서 멍~~~
이제야 겨우 올리네요.

재미있다는 분도 계시지만 점점 추천수가 줄어드니까
잡생각이 많이 들어요.

재미가 없어지는 걸까?
재미없게 쓰나?

그런 걱정에 말이죠.

그래도 전 웃대소설에선 많이 받는 편인데,
욕심이 과한가보네요.

항상 가장 무서운 건,

-잊혀진다는 것.

글 쓰는 이에게 그만한 비극은 또 없는 것 같거든요.

더 열심히 쓰면, 더 재미있게 쓰면 괜찮아지겠죠?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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