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 이리와 보시게. 조선 제일의 이야기꾼이 여기 왔으니,

다들 와서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가시게.

이야기 값으로 먹을 것 마실 것 가져다 주면 좋고,

돈 몇푼 쥐어주는 것도 좋고,

그저 손뼉이나 치면서 놀아도 좋으니

이리와서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가시게!”

모처럼 큰 마을에 도착한 외눈박이 한갓진 공터에 자리 잡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마을이 큰지라 오고 가는 사람도 많고 적적한 사람도 많은 덕에

금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눈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만족스러울 만큼의 청중이 생겼다고 생각한 외눈박은 목을 풀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선 제일의 이야기꾼 외눈박이라 하오.

외눈박이 말고. 외눈 박! 내가 박가니 그렇게 부르는 게 맞지 않겠소?

자자 오늘은 모처럼 이리 많은 사람 앞에 섰으니 기운을 빡 내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소이다.

보자, 오늘의 이야기는 저~ 산 넘고, 들 질너 멀고 먼 동굴에 사는 환락거미에 대한 이야기외다.”




옛날 옛적 아주 먼 산속 깊은 곳엔 환락동굴이라 불리는 음침한 동굴이 하나 있었지.

이게 환락동굴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안에 사는 환락거미 때문인데,

이 거미가 보통 거미냐 하면 그건 아니고 아주 커다란 거미 요괴라 이 말이지.

거미 주제에 덩치는 집채만 한 것이, 황소도 단숨에 낚아채 갈 정도로 힘이 세고.

눈도 좋고 귀도 좋은데다, 그놈의 거미줄은 칼로 내리쳐도 잘려 나가질 않았어.

이야기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팔에 오솔도솔 소름이 올라오지?

그런데 이게 엄청 위험한 요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야.

왜 그런고 하니.

환락거미는 동굴 밖으로 나오는 일이 일절 없거든.

동굴 안에 거미줄을 쳐놓고 있다가 운 나쁘게 동굴을 찾아 들어온 산짐승을 잡아먹으면서 살지.

그러니 동굴 안으로 찾아 들어가지만 않으면 만날 일이 없는 거라.

만날 일이 없으면 무서운 것도 없겠지.

그러면 이대로 평화로운 이야기가 되느냐면 그건 또 아니야.

이 부분이참 재미있는 게. 환락거미의 독 이란 물건이 참 묘해서 말이지.

자 이야기를 해주자면. 환락거미는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을 거미줄로 꽁꽁 묶어 매달아 놓고, 이빨로 콱 물어서 자기 독을 집어넣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쾌감을 주는 독이야.

몸에 기운이 쭉 빠지고. 금방 끝없는 잠에 빠져들고.

머릿속에서는 꽃밭이 쫙 펼쳐지는 데다 사방에서 미남미녀들이 춤을 추면서 다가와서는

입안에다 온갖 산해진미를 넣어준다 이거지.

사냥감이 꿈에 빠져서 헤실거리고 있으면 천천히 천천히 기력을 빨아먹는 게 환락거미 방식이지.

결국 환락거미 독은 세상 둘도 없는 무서운 마약인 거라.

그 소문을 들은 모지리들이 쾌락을 쫓겠다고 제 발로 환락동굴로 기어들어 가기도 하고,

뭣도 모르는 애송이들은 환락거미를 잡고 독을 뽑겠다고 찾아가기도 했지.

그 덕에 환락동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객이 찾아오고,

환락거미는 넘쳐나는 먹을거리에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거미줄을 뿌려댔지.

날이 갈수록 환락동굴로 사라지는 이들이 늘어나니까 이제 보다 못한 요괴 사냥꾼이 나섰지.

조선 최고의 요괴 사냥꾼.

그이가 나서게 된 거야.

물론 사냥꾼에게도 환락거미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어.

천년은 묵은 요괴인데다가 동굴은 미궁이나 마찬가지였고.

혹여라도 독에 당하는 날엔 그 최고의 요괴 사냥꾼도 꿈에서 깨어나기 힘들 터였으니 말이야.

그렇다고 눈치 보면서 살살 피할 사냥꾼이 아니었지.

그래서 준비를 단단히 하고 환락동굴로 들어섰어.

동굴 안은 아주 어두웠지만, 사냥꾼에겐 횃불도 필요 없었지.

그이 눈은 아주 신묘한 힘이 있어서 달빛 하나 안 드는 밤에도 부엉이마냥 잘 볼 수 있었거든.

그래서 그 신비한 눈을 뜨고 동굴 안을 쫙 살펴보니까

이게 사방이 거미줄이라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환락거미가 와라라락 하고 달려들 거란 말이지.

그러니 조심조심 신경을 써가면서 환락거미가 웅크리고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갔지.

가는 동안 갈림길이 많이 나왔지만, 사냥꾼은 눈에 잘 띄는 하얀 조약돌을 잔뜩 챙겨와서

갈림길마다 표시해두어 문제가 없었지.

천장엔 사람이며 짐승들이 저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거미줄에 꽁꽁 싸매인채 매달려있었어.

뭐 구하긴 해야지만 그전에 환락거미부터 처리해야 했지.

그렇게 가지고 온 조약돌을 거진 다 쓸 때까지 깊고 깊은 동굴을 헤매다가

드디어 환락동굴 가장 깊은 곳. 환락거미 둥지를 찾게 된 거야.

대궐 두 채는 너끈히 들어갈 넓은 지하 토실 한가운데 꼭 용상마냥 펼쳐진 거미줄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 환락거미가 웅크려 있었어.

과연 집채만 한 덩치에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지.

사냥꾼은 칼을 빼 들고 천천히 환락거미에게 다가갔어.

만약 자고 있다면 깨기 전에 재빨리 처리 해야 했지.

깨어난다면 아무리 그이라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다가가며 커다란 몸이 움직이는 꼴을 조심스레 살펴봤어.

하지만 운 나쁘게도 환락거미는 자고 있지 않았어.

곧 거미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사냥꾼에게 말했지.

“내 눈을 피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제법이구나.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 사람이냐 요괴이냐?”

당장 적의는 없어 보이는 데다가 요괴 사냥꾼은 누구의 이야기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이였기에

자세를 풀고 대답했어.

“사람이다. 요괴 사냥꾼이지. 너로 인한 인명 피해가 극심하다 하여 널 사냥하러 왔다”

환락거미는 웃었어. 지난 천 년간 사냥꾼들이야 수없이 찾아왔지만 성공한 이는 없었거든.

그렇지만 마냥 무시할 상황은 아니었어.

눈앞에 있는 사냥꾼은 그런 어중이떠중이와는 그 결이 달랐으니까.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대신 이야기를 한 거지.

“난 그저 배를 채웠을 뿐이다.

내 동굴로 들어오는 먹잇감을 잡아먹었을 뿐이야.

밖으로 나가 세상을 어지럽힌 것도 아니니 나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맞는 말이었지. 하지만 그 정도 말로는 사냥꾼을 돌려보낼 수 없었어.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수백은 됨직한 사람들의 신음을 들었다.

그것 역시 네 배를 채우기 위함이더냐?”

“그것들은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내 독은 쾌락과 안정을 주지.

그 덕에 자진해서 내게 물리러 들어오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다.”

“그래. 바로 그것이 문제다. 넌 사냥이 목적이 아니다.

인간들을 환락의 길에 빠지게 해서 기운을 뽑아 몸집을 불리고 있지.

그렇게 몸을 불려 무엇을 하려 하는지 내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냥꾼이 말한 환락거미의 속셈이 무엇이었을까?

자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미물은 수행을 쌓아 영물이 되고 영물은 또 덕을 쌓아

신수가 되어 승천하지.

그럼 영물이 타락하여 요괴가 되면?

요괴가 계속 업을 쌓고 힘을 쌓으면 어떻게 될까?

바로 악신이 되는 거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악신은 지축을 뒤집고 하늘을 불태우는 무시무시한 존재야.

그야말로 온 세상을 집어삼키는 사악한 신이 되는 것이지.

그래. 환락거미의 목적은 그거였던 거야. 악신이 되어 이 세상을 전부 자기 소굴로 만드는 것.

환락거미에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독만 있으면 가능했어.

요괴 사냥꾼은 그걸 막으려 한 거야.

아무튼 이 환락거미는 더 변명거리가 없었는지 그 거대한 몸체를 일으켰어.

“아무래도 곱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구나.

네놈 기운이 범상치 않기에 힘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방해를 하려 하니 네 몸을 열두 등분 내어서 사방에 뿌려주마.”

그 말에 사냥꾼도 칼을 빼 들고는 천지가 뒤집히는 싸움을 시작했지.

동굴 깊은 곳은 산의 맨 아래를 지나 땅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사냥꾼과 환락거미의 싸움 소리가 지축까지 흔들어 버릴 지경이었지.

싸움은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지.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 때,

환락거미에게 잡혀서 환각 속에 잠들어 있던 이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 거야.

열흘이 넘도록 독이 주입되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렸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약해진 거미줄을 헤치고 나온게지.

동굴이 쉴새 없이 흔들리는 통에 우선은 다들 밖으로 도망 나오고 나니

뭔가가 동굴 깊은 곳에서 환락거미랑 싸운다는 건 알 수 있었어.

모르긴 해도 쉬이 끝나진 않을 처절한 싸움이란 건 확실했지.

그렇다면 이 인간들이 어떻게 했을까?

차마 싸움에 끼어들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고 또 빌었어.

꼭 나쁜 놈을 물리치고 거미님이 살아나오게 해달라고 말이야.

아니 잘못 말한 게 아니야.

그 머저리 놈들은 전부 다 환락거미의 독을 원했거든.

그러니 환락거미가 뭔지 모를 이상한 놈을 죽이고 자기들을 다시 재워주길 원했지.

그래서 열하고도 여드렛날.

동굴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사냥꾼을 보고는 노성을 내질렀지.

심지어는 돌멩이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고 말이야.

사냥꾼은 기가 찼지만, 더 무어라 하진 않았어.

말이 통하는 이들이었으면 그따위 짓도 하지 않았겠지.

그 와중에 누군가 소리친 거야.

“아직 환락거미 시체에 독이 남아있을지 모르오!

가서 뽑아냅시다!”

한심한 소리에 사냥꾼이 그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지친 몸으로 그들 전부를 막는 건 무리였어.

결국 포기하고 비척비척 그 자리를 떠났지.






“헛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동굴에 들어가 길을 잃고 죽는다면 그 역시 업일 것이오,

끝내 독을 찾아내어 다시 환각 세계에 산다면 그 역시 제 팔자겠지.

그 인간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리 유쾌한 결말은 아니었을게요.”

외눈박은 어느새 더욱더 늘어난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이야기를 마쳤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 하곤 하지.

그러니 언제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 한껏 자신을 다듬어야 할 것이외다.

자, 이번 이야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소.

다들 잘 들어주셨으니 이 외눈박이 감사의 의미로 절 한번 올리겠소이다.”

외눈박이 손을 들어 보이며 멋들어지게 마무리 인사를 하자 손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이야기 값을 받을 보따리가 제법 두둑했기에 외눈박 역시 만족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값을 치르고 흩어지고 있을 때

멀찌감치서 이야기를 듣던 장돌뱅이 하나가 외눈박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야기 잘 들었소이다. 내 아주 감명 깊게 들어서 이야기 값으로 술 한 상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시오?”

외눈박은 기쁘게 대답했다.

“술이라면 내 마다하지 않지. 내 염치불구 하고 한잔 받아마실 터이니 가십시다.”

외눈박과 장돌뱅이는 근처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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