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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린. 문화인류학과 00학번.
동현이가 첫 눈에 반해버린 그녀.
사실 동현이가 찬수에게 만화동아리에 함께
가입하자고 권유한 이유는 문예린 때문이었다.
* * *
봄바람이 한창 불던 캠퍼스.
신입생들로 북적이던 학생식당 앞에서 동현이는 예린이를 처음 보게 되었다.
검정색앵클부츠에 검정색 스타킹, 회색과 연한 분홍이 섞인 체크스커트에
분홍빛 타이 블라우스. 갈색으로 염색된 긴머리는 중간쯤부터 예쁜 컬이 들어가 있었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산뜻한 화장.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몸매... 흠흠..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매력의 소유자 문예린이 학생식당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공대수업을 끝내고, 반대편에서 학생식당쪽으로 걸어오던 동현이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갑작스레 트롬본효과가 그녀주위로 펼쳐졌다.
그녀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뭉개져 그녀 뒤로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동현이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었는데, 계속 노골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바닥도 쳐다보았다가 잠깐 그녀를 흘깃 바라보고 다시 학생식당쪽을 쳐다보다가 또 흘깃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시선분산 스피드를 최대치로 올렸다. 또 최대한 오래 그녀를 보고 싶어서
걸음의 속도는 있는대로 기어를 내렸다. 순간이지만 동현이의 눈과 머릿 속은 온통 그녀로 도배되었다.
'우와아아아아.... 지인짜 예쁘다....'
그렇다. 동현은 그녀에게 반한 것이다.
그러나 반하면 어쩔 것인가... 그녀와 동현의 스타일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사실 오늘도 엄마가 사준 옷을 입고 대학교에 '등교'했고,
헤어스타일은 중학교때부터 머리통에 정착시킨 상고머리에.
.. 하여튼 기계공학과로 입학한 이상 동현은 대학교를 그저 고등학교의 연장선으로만
생각하고 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스타일 자존감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스스로를 물끄러미 바라본 동현이는 몇일 전 엄마에게
이제 스스로 옷을 고르겠다고 선언한 것이 기억나면서
왜 그때 당장 사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를 하고,
요번 주말에 당장 옷부터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현이가 스타일이 없지 피지컬이 없진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동현이의 별명은 바로.. 4수한 정우성..
4수하느라 고생을 많이해서 노안이 되어버린 정우성이라는 뜻인데..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정우성은 정우성이다.
동현은 식판을 받아들고 그녀가 앉은 곳 근처로 가서
계속 그녀를 관찰하였다. 이름이 뭘까. 과는 어디지? 기숙사생인가? 자취? 므흣..
별별 것들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대왕돈까스에서 나던 모락모락했던 김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생각을 멈추고 이제 밥을 한숟갈 뜰까 하는데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하는 그녀..
제길 돈까스도 다 못 먹었는데.. 그러나 돈까스를 눈에 어른거리게 둘 수는 없는 법 입에 하나가득 넣었다.
동현은 대왕돈까스를 바사삭 바사삭 씹으며 목표를 잡았다.
꼭 그녀의 마음을 얻겠다고..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아마 동현은 자신이 꾸미지만 않았을 뿐.. 스스로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동현에겐
샘솟은 자신감에 대한 이렇다 할 판단도 근거도 타당성 같은 것을 생각해볼 여유는 없었다.
동현은 학생식당을 나서는 그녀를 무작정 따라나섰다.
친구 2명과 함께 수다를 떠는 그녀 뒤를 무심한듯 따랐다.
하지만 이건 미행이 아닌던가.. 금새 찾아온 현타...
'내가 그녀를 따라가서 .. 뭐 어쩔껀데..'
'당장 고백이라도 할꺼야?'
'고백하면 까일텐데..'
모솔특 [까일께 무서워서 고백못함]
그러나 현타든 뭐든.. 그녀를 지나쳐 온 살랑살랑한 바람이
그녀의 달콤한 향수냄새와 샴푸냄새를 동현의 코속으로 전달해주었다.
다음 수업에 늦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긴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동현에게 있어 피리부는 사나이 그 자체였다.
홀린듯 뒤를 따랐다.
동아리회관 건물로 들어선 그녀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또각 또각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갔다.
동현은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티를 내며 그녀보다 한층 아래에서
걸어 올라갔다. 오감은 그녀의 발소리에 완벽히 동기화 되었고,
복도의 왼쪽으로 가는지 오른쪽으로 가는 지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3층에서 올라가는 걸 멈추고 방화문을 지나
양갈레 복도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곳 복도 중간 즈음에
문이 열린 동아리방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온 동현은 잠시 그녀의 위치를 햇갈렸지만,
열려진 동아리방문 안에서 작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목소리도 어쩜... 저건 꾀꼬리가 인간으로 환생한 것이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근거가 없다..
동현은 복도를 지나가는 척하며 동아리명판을 또렷하게 보았다.
[만화동아리 그림광장]
동현의 머릿속은 순간 주마등 같은 느낌으로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그녀와 술을 한잔 하고, 그녀와 사귀고.. 결혼하고
[평범한 모쏠.jpg]
동현이 동아리 입부원서를 쓴건 바로 다음날. 찬수와 술을 마신 다음 날 이었고, 찬수와 함께였다.
입부원서를 쓰고 일주일 뒤 떠난 MT에서 동현은 그녀 옆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술을 먹고 외딴방에 널부러진채 선배들의 얼굴낙서 희생양이 되었다.
그렇게 가을 축제까지 별 이벤트 없이 그녀 주위를 멤돌기만 했던 동현인 것이다.
* * *
쌀쌀한 날씨였지만 주점은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며 술자리게임을 하는 테이블도 있었고,
거국적으로 술잔파도타기를 하는 테이블도 있었다.
동현이와 예린이네 동아리의 테이블도 술잔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고 있었다.
99학번 선배들은 조용하면서 만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면,
복학한 98학번 선배들은 여자후배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동아리방에 와서도 여자후배들이 없으면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회의엔 참가하지 않고 뒤풀이에만 하이에나처럼 어슬렁 거리며 나타났다.
그런 선배들인 예린이의 옆 자리를 독차지하고 앉은 것이 동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철이형과 종수형, 대수형등 예린이 옆을 사수하고 있던 선배들은
자리를 뺏길까 무서웠던지 도무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도리어 갑작스레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예린이었다.
예린은 가방을 주섬주섬 가방과 옷을 챙기더니.
"선배님들 저 잠깐 친구랑 가요제 구경좀 하고 올께요~"
예린이가 갑자기 자리를 뜬다.
뭐 동아리 자체가 개방적인 편이라 똥군기는 없었지만,
예린이 때문에 자리를 지키던 선배들은 내심 서운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걸 또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랴 그냥 가면 우리 서운타~~ 다 보면 언능 와~~"
"네~~"
예린이가 없는 술자리는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사실 예린이는 만화동아리에서 술자리에 참석하는 유일한 여학우였다.
다른 여자동기들, 선배들은 도무지 술자리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다.
（야.. 얌마.. 인나 임마）
"뭠마? ... "
동현이는 술이 세진 않았다. 찬수와 구석탱이에 앉아서 게임얘기나 군대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예린이 옆에 앉을까 계속 구상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소주를 2병이나 마시게 되었다.
（야... 예린이 가요제 구경가버렸어..）
"뭠마? ... 들리게 말해 들리게"
찬수는 맘 속으로 이새끼 개새끼 거리면서 술잔을 자작해서 마셨다.
동현이는 예린이에게 반해서 이 동아리에 들어오긴 했지만,
참 이 동아리도 남여비율이 기계공학과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술병들이 쌓여갔고, 선배들도 예린이가 돌아오지 않자 하나 둘 자리를 몰래 몰래 뜨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은 강호형, 남석이형, 준표형, 동현이, 찬수였다.
보통 동네 남자사람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 이 시점 즈음에 꼭 나오는게 여자이야기,
혹은 되도 않는 품평회... 같은 것들인데. 이 곳 만화동아리는 그런면에서는 상당히 건전했다.
특히 99학번 선배들은 정말 건전해서 진지하게 만화의 스토리와 위대함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동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 저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동현은 벌게진 얼굴을 한채.. 선배들께 화장실행을 고하고 자리를 나섰다.
찬수는 선배들과 최근에 본 애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내가 데리고 들어왔지만, 찬수는 동아리 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동현은 추운 날씨에 옷을 잔뜩 여민 동현은 곧바로 가요제가 벌어지고 있는..
아니. 예린이가 있을 걸로 예상되는 중앙광장으로 향했다.
사실 술에 좀 많이 꼴긴 했지만, 예린이를 향한 더듬이만큼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예린이가 나가고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동현은 예린이가 어디 있는지 레이더를 풀로 가동하였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중앙광장이었지만,
예린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메마른 가을밤에 무대에서 쏘아주는 조명은 그녀를 더욱 빛나게 했다.
'저깄네..'
손을 흔들며 친구와 환호하며 가요제를 즐기고 있는 예린이.
예린이를 쫒아오긴 했지만 동현이는 그동안 예린이와 그럴듯한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밥 잘먹어.. 라던가. 선배가 불러.. 라던가.. 가끔은 예린이가 동현이 왔네?라고 먼저 말을 걸어주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네~~~ 지금까지 가요제에 미리 신청하신 분들의 노래 잘 들어보았구요~ 자 가요제 랜덤플레이 시간입니다.
그냥 노래 부르고 싶으신 분은 무대 위로 올라와주시면 됩니다.
물론 검증이 안된 분들이기 때문에 노래 폭망이면 바로 땡치도록 하겠습니다."
동현은 갑자기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미쳤다. 김동현 미쳤어.
아마 술 먹은 사람이면 알만한 알코올성 용기가 샘솟았던 것일까.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누가 술을 먹었다고 무대에 뛰쳐올라간단 말인가.
사회자는 동현의 벌~건 얼굴을 보았다.
"아~~ 여기 취객이 한분 올라오셨네요~~"
7화 끝.
매주 월-목 업로드 합니다.
전편 추천 2개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즐겁게 글 쓰고 있어요. 꾸벅.
* 펌 불허용 (타 사이트 등록을 불허하며 우클릭, 드래그 등이 금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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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관절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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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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