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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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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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목소리였다.
시야가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고 눈 앞을 확인해보니 파마 머리 좀비의 목에 식칼 하나가 깊숙히 박혀있었다.
분명 내가 신지혜에게 줬었던 식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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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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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머리 좀비 놈은 식칼이 박힌 목을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하며 아스팔트 바닥을 뒹굴었다.
겁 많고 무능해보였던 신지혜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 건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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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머리 좀비 놈에게서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느낀 나는 놈을 마무리짓기 위해 다가가려 했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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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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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따라오던 좀비 놈들이었다.
파마 머리 좀비는 목을 부여잡은 채로 아등바등 좀비들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뛰어가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좀비들은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었고 자칫 잘못했다간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놈을 제거하는 걸 포기하고 ​​​​어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신지혜를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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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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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신지혜는 몰려오는 좀비를 피해 또 다시 달렸다.
하지만 도중에 신지혜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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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갈등했다.
​그녀를 버리고 도망갈 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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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젓고서 메고 있던 배낭을 땅바닥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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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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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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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업고 도로가의 2층짜리 가구점을 지나 안쪽에 보이는 주택가 쪽을 향해 달렸다.
신지혜를 업고 뛰는 상태에서 좀비들을 따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놈들은 아까 처음에 봤던 골목길의 좀비들보다 달리기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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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마다 신체 능력이 다른건가? 아니면...
놈들은 진화라도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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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봤던 붉은 눈의 좀비나 아까 신지혜가 얘기한 뚱땡이 좀비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통상적인 좀비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 놈들이 정말 진화한 건지 아니면 돌연변이인 건지는 몰라도 좀비들 중에 더 발달된 개체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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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해가 져가고 있었다.
주택가 안쪽으로 달려도 달려도 놈들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중간에 다른 좀비들이 더 합류한 탓에 우리를 쫓는 좀비들이 이제는 거의 스무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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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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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가도가도 주택들과 빌라들 밖에 보이질 않았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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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들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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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과의 거리는 채 10m도 되지 않았다.
내가 힘이 다하는 순간, 우리는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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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 멀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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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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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진원지는 여기서 거의 150 ~ 200m 정도 떨어진 한 연립주택의 옥상이었다.
연립주택 옥상에서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사라졌다.
아마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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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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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것 같이 힘들었지만 정말 억지로 억지로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가며 그곳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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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주택까지 거의 2,30m.
어지러운 시야 사이로 가구들로 벽을 쌓아놓은 연립주택의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가구들을 옮겨 출입구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 좀비들을 막으려고 가구들을 쌓아놨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가구들을 치워주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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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보였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그리고 가구 벽 사이에 만들어진 출입구를 통과한 순간,
나는 복도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입구를 지키던 사람들은 재빠르게 가구들을 다시 쌓아올렸다.
좀비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가구들의 벽이 다시 만들어졌다.
한 발 늦게 도착한 좀비들이 들어오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가구 벽은 예상 외로 쉽게 뚫리지 않았다.
각자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을 모조리 가져와 때려박은 건지 가구 벽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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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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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쓰라린 액체가 올라왔다.
정말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뛰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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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아 괜찮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내가 짐덩어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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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가 내 등을 두드려주며 울먹거렸다.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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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물렸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하.... 씨발...
김연성 너 새끼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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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구역질하는 와중에 위를 슬쩍 올려다보니 한 중년 남자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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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람 구하는게 왜 쓸데없는 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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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목소리.
아까 연립주택 옥상에서 이쪽으로 오라고 소리쳤던 그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마른 체형에 170cm 정도의 키, 그리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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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러다가 우리까지 죽으면 니가 책임지게?
지금 저 밖에 있는 좀비들은 또 어떻게 할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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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인지 이마가 훤히 드러난 험악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팔짱을 끼고는 비아냥거렸다.
그 남자의 말대로 좀비들은 여기로 들어오려고 쌓아놓은 가구 벽을 미친 듯이 두들겨 대고 있었다.


쾅! 쾅! 쾅!


사실 여기 사람들 입장에선 꽤나 큰 위험을 감수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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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죽었나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밖에 좀비들도 시간 지나면 물러나겠죠. 엊그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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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애새끼가 어른 말하는데 싸가지 없이 꼬박꼬박 말대답하네? 야 이 새꺄! 너 내가 만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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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김연성이라 불린 그 소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 그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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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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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요 이거! 저 놈의 새끼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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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로 그런거잖아요. 그만 화 푸세요 영택 씨,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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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말리자 영택이라고 불린 중년 남자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는 김연성 쪽을 노려본 뒤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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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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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가 쭈뼛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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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게 뭐 있나요? 방금 화내신 저 분도 요새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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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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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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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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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서로 돕고 사는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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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쪽에서 남은 가구들을 다시 쌓고 있던 김연성이 이쪽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미 좀비가 됐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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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자네들 물린 곳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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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아까 영택이라 불리던 남자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없습니다.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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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다리를 걷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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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네는 나를 따라오고, 거기 여성 분은 진희 엄마가 확인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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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본인들이 안물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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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물음에 남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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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 이런 건 확실하게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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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에 나도 동감했다.
나는 남자를 따라, 신지혜는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남자는 4층에 있는 401호로 나를 데리고 갔다.